비가 온다.
내가 출퇴근 하는 재래시장 길은 협소 한데다 비가 오면 각 점포에서 무질서 하게 드리운 차양막으로 인해 우산을 쓴 채 비를 피하며 제대로 걷기가 불가능 하다.
비를 피하려면 허리를 굽히고 차양막 아래에서 우산대를 접었다 폈다 하며 다른 사람을 요리조리 피해가야 헌다. 이렇게 노력해도 차양에 고인 빗물이 옷과 신발을 적시기 일쑤다.
이래 맞으나 저래 맞으나 어짜피 맞을 꺼면 "차라리 우산을 쓰지 말고 다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우산은 버려두고 멋지게 비를 맞으면 자유롭게 길을 걸을 것인가.
조금 없어 보이고 거추장 스러운 동작이 필요하지만 비를 피하며 길을 걸을 것인가.
며칠 전 경험을 생각 해본다.
업무가 있어 다른 지역에 갔다가 일을 마치고 잠시 근처 명소를 둘러보았다. 일기예보는 한참 전 부터 비가 내린다고 알려주고 있었지만 오락가락 내린 비는 그쳐 있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은 산책로를 통해 걸어가야 하는데 마침 숙소에 우산을 두고 나왔다. 우산 없이 출발할지 그냥 지나칠지 고민했다.
"일기 예보 틀리는거 하루 이틀 일도 아니잖아? 하나님이 나를 돌봐 주시니 잠깐 둘러 보는 동안은 괜찮겠지. 설사 비 좀 내리 더라도 맞으면 되지. 가끔 비 맞는것도 괜찮잖아?"
아무도 없는 조용한 호수변 숲길을 걸으며 새소리를 들으니 이런 훌륭한 판단을 한 내 자신을 칭찬 하고 싶어진다.
목적지에 가까워 지자 호수에 작은 파동들이 무수히 생기기 시작한다. 다행히 나뭇잎들이 비를 어느정도 막아 주지만 문제는 비 맞으며 돌아가기에 내가 너무 오래 걸어와 버렸다.
비가 지나가길 기다리며 큰 나무 그늘에 의지해 보지만 구름 뒤로 보이지 않던 해마저 떨어지고 하늘색은 점점 어두워져만 간다. 내 마음속 같이.
결국 물에 빠진 쥐 꼴이 되어 돌아 오는길.
급하게 돌아 오는길은 왜 항상 갈 때 기억한 길 보다 긴 것인가?
우산 없이 걸어간 내 선택은 옳은 것이였나?
잘못된 것이였나?
우리 인생에도 비오는 날이 있을 거다. 우울한 비도 있을 것이고 가뭄의 단비도 있을 것이고 나를 정화 시키는 비도 있을 것이다. 비가 올 때도 우리 인생은 계속 해서 진행 되고 있고 우산을 들고 가든, 비를 맞든 선택이 필요 하다.
"이왕 비 맞을꺼 시원하게 맞자" 의기 양양하게 생각 했지만 막상 젖은 쥐 꼴이 되고 보니 흠뻑 젖은 채로 차 타는 것 부터 갈아 입을 옷도 마땅치 않을 뿐더러 사람들의 시선 까지 걱정이 한두가지가 아닌 것을 비를 맞고서야 알았다.(사실 나에게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옷 젖은 것 정도는 타인의 시선을 끌만한 관심거리도 아니긴 하다.)
어떤 선택을 하든 좋은 것과 좋지 않은 것은 항상 공존해 있다. 마치 슈레딩거의 고양이 처럼.
좋은 선택처럼 보였지만 반환점에 도달 하기도 전에 나쁜 선택으로 바뀐 나의 걸음 처럼.
어떻게 경험하고 느낄지는 온전히 우리의 몫이다.
오늘은 어떻게 선택하고 결과는 어떻게 느낄 것인가.
비를 맞을 것인가. 맞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인가.
그리고 나중에 깨닿게 된 것인데 하나님은 나에게 밖에 나갈 때 우산을 챙기라고 진작에 알려 주셨다.
일기예보와 안전 안내 문자를 통해... 몇번을 알려 주셨는데 그걸 몰랐으니 비를 쫄딱 맞을 수 밖에.
주변을 잘 살펴보자. 아마 우리 내면에서 나오는 질문의 해답 대부분은 이미 우리 주변에 있을 것이다.
우산을 들고갈지 말지, 비를 맞을지 말지 조차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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